콘텐츠의 연대기
타악기에서 디지털 신시사이저까지, 소리를 만들어내는 도구의 진화

원시 악기
자연물로 리듬과 음률을 처음 빚어낸 시기이다. 악기는 주술 의례와 전쟁 신호를 위한 원초적 도구였으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현악기가 등장했다.
뼈 피리와 타악기
2008년 독일 홀레펠스 동굴에서 독수리 뼈로 만든 피리가 발굴되었다. 약 3만 5천 년 전 유물이다. 인류가 생존 이외의 목적으로 도구를 깎았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 중 하나다. 구멍 다섯 개에 불과한 이 뼈 피리가 어떤 선율을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굴 벽화 옆에서 누군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 소리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깊다.
이집트 고왕국 벽화에는 각궁 하프를 연주하는 악사가 빈번히 등장한다.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릉에서는 황금 장식의 리라가 출토되었다. 이 시기 악기의 재료는 뼈, 가죽, 갈대, 동물의 창자 등 자연 그 자체였다. 악기를 만드는 일은 사냥과 도축의 부산물을 소리로 변환하는 행위였고, 연주는 신에게 바치는 제의이거나 전장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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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악기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독자적인 악기 체계가 확립된 시기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악기가 교류하고, 교회 오르간과 궁중 현악기가 음악의 골격을 형성했다.
동서양 악기의 교류
기원전 6세기경 중국에서 편종과 편경이 궁정 의례의 핵심 악기로 자리 잡았고, 비파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에서 동아시아로 전해져 당나라 악단의 주역이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왕산악이 중국 칠현금을 개량해 거문고를 만들었고, 가야에서 가야금이 탄생했다. 동아시아의 악기 체계는 금(쇠), 석(돌), 사(실), 죽(대나무) 등 재료별 분류인 팔음에 따라 정리되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교회가 악기 발전의 중심축이었다. 9세기경 수도원에 설치된 초기 파이프 오르간은 수백 개의 금속·나무 관에 바람을 불어넣어 성당의 석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장엄한 소리를 만들었다. 세속 음악에서는 류트가 음유시인의 반주 악기로 사랑받았다. 동서양의 악기는 각자의 음계와 미학 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지만, 실크로드와 십자군 원정을 통해 끊임없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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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
목재와 금속 가공 기술이 발전하며 악기 제작이 공예의 정점으로 격상된 시기이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등 오케스트라의 뼈대를 이루는 악기들이 형태를 갖추었다.
바이올린과 목관악기
16세기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에서 현악기 제작의 황금기가 열렸다. 안드레아 아마티가 바이올린의 원형을 확립했고, 이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주세페 과르네리가 알프스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를 깎아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공명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악기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가 독주 악기로 쓰인다.
같은 시기 관악기도 급속히 진화했다. 르네상스의 숌(Shawm)이 바로크의 오보에로 세련되었고, 플루트는 원통형에서 원추형 보어로 재설계되어 음역과 음색이 확장되었다. 악기 제작은 과학적 비례와 장인의 직관이 교차하는 최고의 길드 공예가 되었고, 이 시기 정립된 악기의 규격 위에 작곡가들은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소리의 건축물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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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악기
해머로 현을 쳐서 강약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도입되었다. 피아노는 단일 악기로 오케스트라에 필적하는 화성과 다이내믹을 구현하며 낭만주의 음악을 폭발시켰다.
피아노
1700년경 피렌체의 악기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하프시코드의 한계를 돌파했다. 깃털로 현을 뜯는 대신 가죽 해머가 현을 때리고 즉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탈 장치를 고안한 것이다. 건반을 누르는 힘에 따라 소리의 크기가 달라졌고, 그는 이 악기를 '피아노 에 포르테'라 불렀다.
19세기 산업혁명기에 나무 프레임이 주철로 교체되면서 현의 장력과 음량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피아노는 거실의 살롱 악기에서 대형 홀을 채우는 콘서트 악기로 격상되었다. 쇼팽은 피아노 고유의 서정적 음색을 극한까지 탐구했고, 리스트는 초절기교로 관객을 열광시켰다. 피아노는 독주로 오케스트라의 음역을 아우르는 유일한 악기가 되었고, 작곡가에게는 사고의 도구이자 음악적 실험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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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악기
밸브 시스템이 발명되어 금관악기가 모든 반음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관현악단이 완전한 편성을 갖추었고, 색소폰이라는 혼종 악기가 재즈의 목소리가 되었다.
금관악기
19세기 이전의 금관악기는 자연 배음만 낼 수 있었다. 호른 연주자는 벨 안에 손을 넣어 음정을 보정했고, 트럼펫은 조를 바꿀 때마다 관을 갈아 끼워야 했다. 1815년경 독일에서 로터리 밸브가, 프랑스에서 피스톤 밸브가 발명되면서 이 제약이 사라졌다. 금관악기는 비로소 모든 반음을 자유롭게 연주하는 선율 악기가 되었다.
1846년 벨기에의 아돌프 삭스는 금관의 역동성과 목관의 유연함을 결합한 색소폰을 특허 등록했다. 군악대를 위해 만들어진 이 악기는 20세기에 들어 재즈의 핵심 악기로 변모했다. 베를리오즈, 바그너, 말러로 이어지는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밸브 금관의 폭발적 음량과 화려한 음색을 활용해 100명 이상의 대편성 관현악을 구축했다. 오케스트라는 이 시기에 현재와 같은 4관 편성의 완전체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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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기타
마그네틱 픽업이 현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고 앰프가 증폭시킨다. 솔리드 바디 기타와 디스토션은 록 음악이라는 장르를 창조했다.
일렉트릭 기타
1930년대 빅 밴드 재즈에서 기타는 관악기와 피아노에 묻혀 존재감이 없었다. 어쿠스틱 공명통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었다. 현의 진동을 전자기 유도로 전기 신호로 바꾸는 픽업이 발명되면서 기타는 앰프를 통해 어떤 악기보다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1950년대 펜더와 깁슨이 솔리드 바디 기타를 양산하면서 전기 기타 고유의 음색이 장르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진공관 앰프를 과부하시켜 만들어낸 디스토션은 '고장 난 소음'이 아니라 록 음악의 통제된 미학이 되었다. 1969년 우드스탁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로 연주한 미국 국가는 전기 악기가 시대의 분노와 자유를 가장 날카롭게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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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사이저
전압으로 음파를 합성하는 신시사이저에서 출발해, 디지털 FM 합성과 소프트웨어 가상 악기로 진화했다. 물리적 매체 없이 소리를 설계하는 시대가 열렸다.
신시사이저와 DAW
1964년 로버트 무그가 상용화한 신시사이저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전압의 높낮이로 만들어냈다. 사인파와 톱니파를 발진시키고 필터로 배음을 깎아내는 행위는 연주라기보다 소리의 프로그래밍이었다. 1983년 야마하 DX7이 디지털 FM 합성을, 롤랜드 TR-808이 전자 드럼 비트를 대중화하면서 신스팝과 힙합의 사운드가 탄생했다.
1996년 스테인버그의 VST 기술은 수만 달러짜리 하드웨어 신시사이저를 노트북 플러그인으로 대체했다. 에이블톤 라이브 같은 DAW와 수백 기가바이트의 샘플 라이브러리가 결합되면서 침실 프로듀서의 시대가 열렸다. 뼈 피리로 시작된 악기의 역사는 물리적 떨림 없이 알고리즘으로 음파를 설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