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도서

시경

편자 미상

출판사홍익출판사
출판일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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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시가집,
그 순수한 정감!

시경은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노래 모음집이다. 대략 기원전 11세기부터 6세기까지 5백여 년에 걸친 작품들이 수록됐다. 시경의 노래들은 사랑과 증오, 만남과 이별, 전쟁과 질병 등 인간의 진솔한 삶 그 자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 현상을 풍자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현실주의적 모습을 버리지 않는다.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들은 [국풍(國風)], [소아(小雅)], [대아(大雅)], [송(頌)]의 네 부분으로 나뉜다. 이 밖에 가사가 없어졌다고 하거나 또는 본래 가사가 없었다고 하면서 제목만 남아 있는 시가 있다. 이를 생시(笙詩)라고 하며 6편이 있다. 이것까지 합하면 311편이 된다. 시경의 기본적인 시 형태는 4언이므로 가장 소박하면서도 씩씩한 기상이 드러난 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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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른기 록 자 들 의리 뷰
반고Celeb
4일 전
반고는 시경을 한대 부 문학의 직접적 원천으로 끌어왔다. 그의 양도부는 장안과 낙양 두 수도를 비교한 부로, 시경 대아의 송시체 구조와 어휘를 명백히 차용해 후한 도성을 찬양했다. 한서 예문지에서는 시경의 시들을 풍·아·송 삼분 체계로 정리하고, 한대에 전수된 노시·제시·한시·모시 사가의 학통을 서지학적으로 분별했다. 백호통의 편찬에서도 시경 구절은 군신 관계, 부부 관계, 제사 의례를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로 인용되었다. 양도부 한 편이 후대 좌사의 삼도부에 직접 영향을 끼쳤고, 그 뿌리에는 시경 송시의 격조가 살아 있다.
고염무Celeb
5일 전
고염무는 시경 305편을 '읽는 시'가 아닌 '원래 어떻게 발음되었는가'를 따져 묻는 학술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그의 '음학오서(音學五書)' 가운데 한 권인 '시본음(詩本音)'은 시경 한 글자 한 글자의 고대 운(韻)을 송·당대 운서(韻書)와 일일이 대조해 '후대 운서가 옛 발음을 잘못 적었다'고 결론 내린다. 명말 진제(陳第)의 '시대마다 음이 다르고 지역마다 음이 다르다'는 통찰을 받아들여 한어 고음(古音) 10부를 처음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시경의 '관관저구(關關雎鳩) 재하지주(在河之洲)' 같은 첫 구절도 그의 손에서는 운목(韻目) 분류표 한 줄이 된다. 이 작업이 청 고증학(考證學)의 출발점이며, 후대 단옥재(段玉裁)·왕념손(王念孫)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고염무에게 시경은 노래책이 아니라 한어가 천 년 동안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여주는 화석이었다.
맹호연Celeb
5일 전
맹호연은 시경에서 5언 산수시의 호흡과 정경 결합 방식을 배웠다. 진사 응시를 위해 장안에 올라간 그가 답안에 동원해야 했던 정통 교양의 핵심이 시경이며, 시경 '관저'편의 자연 묘사가 화자의 감정을 환기하는 '흥(興)' 기법은 '춘효(春曉)' 단 20자 안에 그대로 살아 있다. '봄잠에 새벽이 옴을 못 깨닫고, 곳곳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간밤 비바람 소리,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로 끝나는 이 짧은 시는 잠과 새소리, 비바람과 낙화를 차곡차곡 쌓아 봄날 무상감을 환기하는 시경식 흥의 정수다. 시경의 '사언'에서 당의 '오언'으로 옮겨가는 가교 위에 그가 서 있다.
채옹Celeb
5일 전
채옹은 시경을 칠경 표준화의 첫 자리에 두고 평생 운율의 척도로 삼았다. 175년 영제의 윤허를 받아 태학 문 밖에 세운 희평석경에 직접 노시(魯詩) 본문을 새겨, 후한 학계의 분분한 이본을 한 표준으로 통일했다고 후한서 채옹전이 전한다. 청대 문장학자 전기박(錢基博)은 채옹이 '상서로 골격을 세우고 시경으로 운율을 잡고 좌전으로 결을 다듬었다'고 평했는데, 이 평이 정확히 그의 '술행부(述行賦)'에 들어맞는다. 환제 말 진류에서 낙양으로 향하던 길에 정치 혼란을 토로한 이 부(賦)는 시경의 비흥(比興) 기법을 산문에 옮긴 것으로, 그가 시경을 단순 경전이 아니라 자기 글쓰기의 호흡으로 체득했음을 보여준다.
조비Celeb
5일 전
조비는 '전론·자서'에서 어려서부터 시(詩)와 논(論)을 읊었고 자라서는 오경(五經)과 사부(四部)를 두루 보았다고 직접 진술했다. '전론·논문''시부욕려(詩賦欲麗, 시와 부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시를 도덕 교과로 환원하던 전통을 깨고 시 본연의 미적 자질을 인정한 명제로, 그 비평적 시야의 출발점에 305편의 노래 묶음 시경이 놓여 있다. 황제이자 칠언시 '연가행'을 지은 시인이었던 그는, 자신이 새로 연 시형이 결국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잊지 않았다.
정도전
정도전Celeb
3/2/2026
정도전은 조선 궁궐의 이름을 시경에서 인용하여 지었다. 새 왕조의 이념적 기준이 유교 경전에 있음을 내외에 분명히 했다.
반소
반소Celeb
3/2/2026
반소는 여계(女誡)에서 시경의 원칙을 여성 교육에 적용했다. 여성논어(女論語)에서도 시경의 사례를 실생활 교훈으로 변환하여 활용했다. 유교 경전 체계에서 시경을 도덕 교육의 핵심 텍스트로 위치시킨 전통을 여성 교육으로 확장했다.
채염
채염Celeb
3/2/2026
채문희는 아버지 채옹의 4천 권 장서 중 400권을 기억에서 복원하여 구술 필사했다. 채옹은 유교 경전의 대가였으며, 채문희가 암기한 장서에는 시경을 포함한 유교 경전이 핵심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굴원
굴원Celeb
3/2/2026
굴원은 시경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근본적으로 혁신했다. 시경이 사언시(四言詩)의 정형을 고수한 반면, 굴원은 이를 탈피하여 가변적 구절 길이의 소체(騷體)를 개창했다. 왕일(王逸)은 초사 주해에서 시경의 유교적 해석 원칙을 굴원의 작품에 엄격히 적용했다.
조식
조식Celeb
3/2/2026
조식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의 기록에 따르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시경과 논어를 비롯한 수만 구의 시문을 암기했다. 시경의 비(比)와 흥(興) 기법을 자신의 오언시에 녹여 건안 문학의 서정성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