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도서

논어

공자

20220930

출판사홍익출판사
출판일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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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동양고전 슬기바다 시리즈 총 250만 부 판매 기념
읽기 편한 'Special Edition 무선제본 특별판'으로 만난다!

시대를 뛰어넘어 삶의 지혜를 전하는 동양철학의 최고봉 불안한 일상을 이어가는 현대인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동양고전 출판의 명가 홍익이 '동양고전 슬기바다 총서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논어를 비롯한 17권의 고전 명작을 출간한 지 어언 27년.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시리즈 합계 200만 부를 돌파했다. 홍익은 이를 기념하고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읽기 편한 무선 제본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번 특별 소장본은 현대인에 맞는 번역문과 풍부한 해설, 그리고 역사적 배경 설명과 난해한 공자의 철학을 쉽고 명징한 언어로 해설하여 누구라도 공자의 담론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지난 27년 동안 동양철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홍익의 '동양고전 슬기바다 시리즈'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이 책에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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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른기 록 자 들 의리 뷰
정현Celeb
4일 전
정현은 '논어' 전체에 주(注)를 단 첫 본격 주석가로 꼽힌다. 마융 문하에서 5경을 익힌 뒤 고향으로 돌아간 정현은, 산둥의 강당에서 제자들과 '논어'를 강독하며 한 글자 한 어구의 사승(師承)을 따져 달았다. '후한서' 정현전은 그가 여러 경전 중 '논어주'를 가장 일찍 정리해 강의 교본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후대에 위(魏)의 하안(何晏)이 '논어집해'를 편찬할 때 정현 주를 가장 자주 인용했고, 둔황 사본에서도 정현 '논어주' 잔편이 다수 발견되어 그의 주석이 한대 이래 표준 해석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반고Celeb
4일 전
반고는 한서 전반에서 논어를 도덕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후한 시기 논어는 모든 학자가 통과해야 할 정통 교양이었고, 반고는 한서 예문지에서 논어를 칠략 분류 안에 정식으로 편입하면서 그 정전성을 제도적으로 못 박았다. 인물 열전의 찬어, 즉 평론 부분에서는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논어의 잣대를 반복해 인용했다. 79년 백호관 회의를 정리한 백호통의 편찬에서도 논어가 경전 해석의 핵심 근거였다. 사마천이 사기 공자세가를 통해 공자를 제후 반열에 올린 데 비해, 반고는 한서에서 공자의 후예와 학통을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 논어의 제도적 무게를 다음 세대에 넘겼다.
오승은Celeb
4일 전
오승은은 '논어'에서 군신·사제 의리의 골격을 가져와 삼장법사·손오공의 사제 위계를 만들었다. 군군신신부부자자라는 정명의 원리, 곧 자기 위치에서 본분을 다한다는 윤리가 본작에서 사부의 권위를 끝까지 받아들이며 호위하는 손오공의 직무 윤리로 옮겨졌다. 회안 출신 오승은 자신이 평생 진사 시험에 응시한 유생이었던 만큼, 본작의 도교·불교 풍자 안에도 유교 충효의 가치 척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명말 청초 김성탄 비평본 '제오재자서'는 본작이 표면은 불도라도 뼈대는 유가 의리라고 평했는데, 삼장법사가 위기 때마다 충서·인의를 고집해 손오공을 머리띠 주문으로 다스리는 장면이 그 실증이다. 오승은은 유교를 등장인물의 가치 기준으로, 도불을 무대 장치로 분리 배치했다.
장제스Celeb
5일 전
장제스는 절강 봉화의 사숙에 들어간 여섯 살부터 유학의 글에 매여 살았습니다. 대만 국사관과 후버 연구소가 공개한 그의 어린 시절 기록에 따르면 그는 아홉 살에 이미 대학과 중용과 논어와 맹자의 사서를 다 외웠고, 그 다음으로 예기를 읽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 왕채옥을 '유학의 모든 도리를 한 몸에 모은 사람'이라 회상했고, 그 어머니의 가르침이 어린 그를 논어의 세계로 끌어들였습니다.

장제스가 논어에서 평생 마음에 새긴 것은 군자가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가르침과 안중에 어진 마음과 의리를 두고 사적 욕망을 비우라는 권면이었습니다. 1934년 그는 신생활운동을 일으키며 예의염치 사덕을 군대와 관료의 일상 규율로 끌어내렸고, 그해 군관 훈련생들에게 직접 강의한 자리에서는 논어가 사람과 정치의 모든 도리를 빠짐없이 담고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매일 새벽 일기를 펴기 전 옛 책 한 편을 읽는 그의 일과에서 가장 자주 펴진 책이 논어였고, 만년의 대만에서도 그는 논어 한 구절을 외워 자제 장경국에게 훈계의 머리말로 삼곤 했습니다.
저우언라이Celeb
5일 전
저우언라이는 어린 시절 양어머니 진씨에게 사서오경의 첫 책으로 '논어'를 배운 뒤, 톈진 남개학교에서도 정통 한문 교육의 핵심 텍스트로 다시 만났다. 영문 위키피디아 'Zhou Enlai' 항목은 그가 '논어 대학 중용 시경'을 어린 시절 학습했다고 적시하며, 회안주은래기념관 자료는 양어머니 진씨가 시문·서예에 능해 어린 저우언라이에게 직접 한문 고전을 읽혔다고 기록한다. 그가 평생 보여준 '극기복례'식 자기 절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협상 자세, '신독(愼獨)'에 가까운 사생활 검소함은 모두 논어의 어휘와 가치 위계가 신체화된 결과로 평가된다. 닉슨과 키신저가 회고에서 '저우는 동아시아 유교 정치 전통이 공산주의 외피를 입은 인물'이라 적은 까닭도, 협상 테이블 너머의 그의 자세가 논어의 군자상과 정확히 겹쳐졌기 때문이다.
고염무Celeb
5일 전
고염무는 평생의 학문 노트 제목 '일지(日知)'논어 '자장(子張)'편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날마다 모르던 것을 새로 알고, 달마다 익힌 것을 잊지 않으면 학문을 좋아한다 할 만하다'는 자하의 말이다. 그는 30년간 책을 읽다 새로 깨친 대목이 있을 때마다 적었고, 그렇게 쌓인 글이 '일지록' 32권이 되었다. '일지록' 권7까지의 '경의(經義)'편은 논어 본문의 자구(字句)·고음(古音)·후대 주석을 한 항목씩 따져 묻는 고증학의 출발점이다.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 천하가 일어서고 무너지는 데에는 평민 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일지록' 권13 '세풍(世風)' 가운데 '정시(正始)' 항목의 명제도 군자의 '행기소불행(行己所不行)' 자세를 묻는 논어 정신의 17세기적 재해석이다. 고염무에게 논어는 명 멸망 후 30년 망국의 길에서 자기 처신을 가늠하는 거울이었다.
정이Celeb
5일 전
정이는 '논어'를 도학의 출발점으로 삼아 평생 강설했다. 그는 '논어'에서 '경(敬)''인(仁)'의 두 축을 끌어내, 자신의 수양법인 '거경(居敬)·궁리(窮理)'로 재구성했다. 거경은 마음을 한결같이 다잡아 흐트러뜨리지 않는 공부이고, 궁리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드는 공부다. 정이는 '함양(涵養)은 모름지기 경(敬)으로 해야 하고, 학문의 진보는 치지(致知)에 있다'고 가르쳐 '논어'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송학의 수양 강령으로 끌어올렸다. 후대 주희는 '논어집주(論語集註)'를 편할 때 정이천의 강설을 가장 많이 인용해 '정자왈(程子曰)'로 표기했고, '근사록'에 정이의 '논어' 해석이 대량으로 수록되었다. '논어'는 정이를 통해 한대 훈고학의 자구 풀이에서 송대 도학의 심성 수양서로 격상되었다.
장재Celeb
5일 전
장재는 일생을 통해 공자의 인(仁) 한 글자를 자기 우주론의 출구로 삼았다. 위키백과 '장재' 항목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성론' 항목이 전하듯, 그가 단 253자로 적어 후일 '서명'으로 개명된 글의 결론은 곧 천지만물과 자아의 일체에서 인이 나온다는 명제다. 또한 횡거사구 가운데 '옛 성인의 끊긴 학문을 잇겠다'는 다짐은 공자가 논어 '술이' 편에서 자기를 '옛것을 전할 뿐 새로 짓지 않는' 자로 규정한 자세를 그대로 이어 받아, 천 년의 단절을 자기 한 몸에 잇겠다는 사대부 사명선언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범중엄Celeb
5일 전
범중엄은 어머니가 재가한 빈한한 집에서 절에 의탁해 공부했다. 매일 죽 한 그릇을 굳혀 네 조각으로 나눠 끼니로 삼은 '단죽' 일화가 송사 본전에 남아 있다. 그가 매달린 책이 바로 '논어'였다. 본전은 '오경에 통하고 의리에 정밀했다'고 적었으며, 그가 1036년 좌천 후 진주에서 쓴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는 광무제와 엄광의 옛일을 들어 '군자의 덕은 풍성하고, 선비의 절조는 굳다'며 공자가 안연을 평한 '불천노, 불이과'(怒를 옮기지 않고 허물을 두 번 짓지 않는다, 옹야편)와 같은 정신을 옛 인물 평가의 잣대로 삼았다. 경력 신정의 십조 가운데 '명출척'·'택관장' 항목은 '위정이덕'의 공자식 이상행정을 송대 인사 제도로 옮긴 작업이었다. 범중엄은 '논어'를 권력자의 자기 단속 매뉴얼로 다시 썼다.
공융Celeb
5일 전
공융은 공자의 20세손이라는 가학을 평생 자긍심으로 삼았다. 후한서 공융전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명사 이응의 집을 찾아 '선군 공자께서 그대 선조 노자(이이)와 더불어 덕을 견주고 의를 비교하며 서로 스승이자 벗이었으니, 저와 그대는 대대로 통가의 우호가 있습니다'라고 답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훗날 그는 명사 녜형과 만나 '중니가 죽지 않았구나'라는 평을 듣자 '안회가 다시 살아났구나'라고 화답하며 자신과 녜형을 공자·안회의 관계에 빗댔다. 공융이 평생 인용한 도덕적 잣대와 군신·부자에 관한 격론 모두 ''''를 축으로 한 공문의 사유 위에 서 있었으며, 그가 조조에게 대놓고 비웃은 풍간의 어조 또한 공자의 곧은 직간을 흠모한 가학의 산물이었다.